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서 그 슬픔이 분노로 바뀌는 경험,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영화 《데이라이트 엔드》(Daylight's End)를 보면서 그 감각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아내를 잃은 주인공 루크의 복수 여정은 단순한 액션 서사가 아니었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혼자 살아남는 것과 함께 살아남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거듭하는 이야기였습니다.복수 여정: 루크는 왜 혼자 떠돌았을까좀비 아포칼립스(zombie apocalypse), 즉 좀비 대재앙이 닥친 세계에서 루크는 아내를 잃고 홀로 복수의 길에 나섭니다. 저는 처음에 이 설정이 전형적인 원맨 액션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루크가 움직이는 방식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루크는 좀비들이 광감수성(photosensitivity)을 가진다는 점..
솔직히 저는 노르웨이 재난영화가 이 정도일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2015년 개봉한 《더 웨이브(Bølgen)》는 노르웨이 게이랑에르 피오르드에서 실제로 발생 가능한 산사태와 초대형 쓰나미를 소재로 만든 작품인데, 보는 내내 손에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단순한 재난 스펙터클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이상 징후를 먼저 알아챈 사람의 막막함영화에서 제가 가장 답답하게 느낀 장면은 뜻밖에도 쓰나미가 아니었습니다. 지질학자 크리스티안이 이사를 앞두고 주변의 이상한 변화를 감지하는 초반부였습니다. 지하수가 갑자기 말라버리고, 절벽 사이에서 물이 새어 나오는 걸 보고 그는 산이 내부에서 갈라지고 있다는 걸 직감합니다.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지반 수축..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 정작 그 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도망자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더블 타겟》을 처음 봤을 때 이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봐보니, 이 영화가 단순한 저격 액션이 아니라 권력과 신뢰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누명, 믿었던 조직에 칼 맞은 사람의 이야기영화는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됩니다. 미 해병대 소속 저격수 밥 리 스웨거는 본부의 명령을 철석같이 믿고 임무에 나섰다가, 아군 헬기의 공격으로 동료 도니를 잃습니다. 저는 이 오프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첩보·액션 영화에서 동료의 죽음은 분노의 방아쇠 역할에 그치는데, 이 장면은 스웨거가 왜 이후에 국가와 조직에 대한 불신을 품게 되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
솔직히 저는 《블랙 라이트》(Blacklight, 2022)를 처음 틀었을 때, 또 흔한 리암 니슨 액션물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생각보다 불편한 질문 하나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법과 질서를 수호해야 할 FBI가 오히려 무고한 시민을 제거하고 있다면, 그 조직을 믿고 일한 사람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권력 남용 — 정의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것영화는 정치 활동가 소피아가 열정적인 연설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단순한 사고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쌓여갈수록 이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FBI 비공식 요원 트레비스는 손녀와 시간을 ..
바이러스 감염자를 모두 죽도록 내버려 둔 줄 알았는데, 사실 일부는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2008년 닐 마샬 감독의 는 바로 그 전제로 시작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건 그냥 좀비 액션이 아니구나"였습니다. 정부가 숨긴 진실, 살아남은 자들의 질서, 그리고 권력이 위기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 그 세 가지가 겹쳐지는 지점이 꽤 날카로웠습니다.봉쇄 사회 — 장벽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영화는 스코틀랜드 전역에 리퍼 바이러스(Reaper Virus)가 퍼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리퍼 바이러스란 영화 속 설정상 치사율이 극도로 높은 가상의 출혈열 계통 바이러스로, 실질적인 치료법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가 즉각적인 격리 조치를 취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입니다. ..
인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인간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면, 그게 과연 기계의 실패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실패일까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그 질문을 꽤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기계가 스스로 판단해 인류를 적으로 규정하는 설정이 단순한 SF 상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마주한 기술 발전의 방향과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인공지능 반란, 크로노스가 지목한 지구의 문제는 인간이었다영화의 출발점은 꽤 익숙한 풍경입니다. 로봇이 인간의 일상을 대신하고, 전쟁터에도 투입되는 세상.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이야기를 따라가보니, 이 배경 자체가 이미 결말의 복선이었습니다.천재 발명가 엘리아스는 전쟁 피해와 그에 따른 비난을 해결할 목적으로 범용 인공지능 크로노스를 개발합니다. 여기서 범용 인공지능(AG..
도둑질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정의로울 수 있을까요? 법을 어기면서도 법이 닿지 못한 곳을 건드리는 사람들, 2009년 영화 《홍길동의 후예》는 이 불편한 질문을 코미디와 액션으로 포장해서 꽤 솔직하게 던집니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저는 가볍게 웃고 넘기려 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의적 설정과 이정민 수사: 고전을 현대로 끌어온 방식영화의 핵심 설정은 단순합니다. 대학 교수, 전업주부, 고등학교 교사처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사는 가족이 사실은 홍길동 가문의 18대 후예라는 것입니다. 이 가문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것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훔친 것은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쓴다, 개인의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선행(善行)을 위한 범행이라는 이..
밀폐된 공간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공포 영화를 보다 보면 "왜 저기서 안 나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꼭 한 번씩 있습니다. 저도 《고스트 쉽》을 보면서 정확히 그 지점에서 멈췄습니다. 1962년 실종된 호화 유람선 안토니아 그라자호를 발견한 인양 팀이 금화 더미 앞에서 이성을 잃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 배에 실제로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 쌓이는 흐름이 생각보다 훨씬 영리하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인양 작업의 시작과 안토니아 그라자호의 정체영화는 예인선(tugboat) 한 척이 난파 직전의 배를 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예인선이란 자력 항행이 불가능한 선박을 밧줄로 연결해 끌거나 밀어 목적지까지 이동시키는 특수 선박을 말합니다. 제가 이 오프닝을 보면서 느낀 건, 이 팀이 단순히 돈을 좇는 ..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뉴 노멀》을 보고 나서 며칠째 그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걸립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위험, 그리고 온라인에서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현실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이 영화는 꽤 섬뜩하게 보여줍니다. 하이퍼링크 시네마, 파편처럼 흩어진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질 때《뉴 노멀》은 하이퍼링크 시네마(Hyperlink Cinema)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여기서 하이퍼링크 시네마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각각 독립적으로 전개되다가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교차하거나 연결되는 영화 서사 방식을 말합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바벨》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 예..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톰 크루즈 액션 영화 중 하나겠거니 하고 틀었습니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무언가 달랐습니다. 조용한 산책로에 갑자기 총성이 울리고, 모든 증거가 한 사람을 가리키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정말 이 사람이 범인이 맞나?" 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영화 《잭 리처》는 그 의심 하나로 끝까지 달리는 범죄 스릴러입니다.완벽해 보이는 총격 사건, 그래서 더 수상했다영화는 느긋한 오후 풍경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총격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밴을 몰던 남자가 아무 이유 없어 보이는 산책객들을 향해 총을 쏘고,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탄피와 지문을 근거로 이라크전 참전용사 제임스 바를 체포합니다.여기서 범죄 수사에서 말하는 물리적 증거(Physical Evidence), 즉 탄피·지문처럼 현..

